운보 김기창은 8세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이 마비돼 후천성 청각 장애인이 되었지만, 침묵의 고통을 극도로 예민한 시각적 심미성으로 발전시킨 한국 화단의 대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던 운보는 17세가 되던 1930년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에게 전통 산수화와 인물화 기법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시작으로 이후 최고상인 ‘창덕궁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매년 수상했다. 이 시기 운보는 사실적인 구상 미술에 주력했다. 광복 이후에는 1946년 결혼한 여류 화가 우향(雨鄕) 박래현(1920~1976)과 함께 새로운 화풍 실험에 주력했다. 당시 일상을 그린 풍속을 다루면서 공간을 분할하고 재조립한 화면 구성이 돋보이는 입체주의적 작품과 반추상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1950년대 초반에는 신앙화 시리즈로 주목을 받았다. 예수의 출생부터 부활까지 총 30점으로 구성된 ‘예수의 생애’(1952~1953) 연작은 화풍뿐 아니라 배경, 복장, 인물 등을 모두 조선 시대로 변환시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작가관
김기창 화백의 작품들은 30년대의 초기작에서부터 80년대 후반의 근작에 이르기까지 60년간의 화력을 통해 매우 급진적이고도 역량있는 변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기존 회화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혁신을 거듭하는 실현적 시도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잇으며 더 나아가 안주를 기피하는 창의적인 예술가의 진취적 기질에 연유하는 화력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을 통하여 드러나는 운보의 예술은 결국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현재 우리나라 화단에서 독보적인 그의 위치를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운보 김기창은 왕성한 실험정신으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 한국화단의 거목이다. 타고난 예술혼과 활화산같은 창작열로 호평받았으며 청각장애로 인한 침묵의 고통을 딛고 우뚝선 의지의 인물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각종 미술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아니더라도 예술분야에 남긴 운보의 업적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운보는 이러한 것에 초연하다. 예술은 완성될 수 없기에 끊임없이 창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예술관이다.